선생님, 우리 선생님

아이들 미래에 ‘로켓’을 쏘아 올리다

봉천 초등학교 강성기 선생님

지금껏 종종 언론의 관심을 받아 왔던 한국과학발명놀이연구회장 강성기 선생님. 이제 인터뷰나 카메라 플래시가 익숙할 만도 한데, 여전히 낯빛을 붉히며 손사래 치는 모습이 마치 소년 같다. 현재 봉천초등학교 교사로, 과학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는 강성기 선생님의 수줍음 이면에 숨은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일까?

글. 이윤원

“안녕하세요~ 네, 제가 바로 알아보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아! 그거요? 지금 자료 보낼게요”

수업이 끝난 봉천초등학교 6학년의 한 교실. 5월의 햇살은 기분 좋게 창을 뚫고 들어와 나무로 만든 작은 책걸상을 정겹게 비추고, 옆 교실에서 들리는 몇몇 아이들의 리코오더 연습 소리가 귓불을 사랑스럽게 간질이는 한가로운 오후인데, 강성기 선생님은 연신 쏟아지는 전화 세례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봉천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자 학년 교무주임을 맡고 있는 그는 한국과학발명놀이연구회(이하 과발연)에서 올해로 벌써 9년째 회장직을 맡고 있을 만큼 열정적인 사람이다.

강선생님이 담임을 맡고 있는 교실 한켠 아이들의 눈높이 맞춘 야트막한 책꽂이에 알록달록한 책이 유독 눈에 띤다. <과학놀이> <로켓놀이> <발명놀이> <깜짝! 과학실험>이란 이름의 책들. 지난 98년 그가 몸이 아파 병상에 누워있을 때 쓴 책이란다. ‘늘 일을 만들어 고생 한다’라는 아내의 걱정 섞인 푸념을 뒤로 하고 탄생한 4권의 책은 지금도 아이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알짜배기 과학서다. 뭐든 열심히, 그리고 열정적으로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은 그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건 어쩌면 그 4권의 책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단순히 주입식 교육이 아닌, ‘왜?’라는 질문을 끌어낼 수 있는 과학의 원리를 가르치고 싶었어요. 사실 학교 수업이란 게 학생들은 단체로 앉아 있고 선생님 한사람만이 앞에 나가 ‘이건 시험에 나오니까 중요하다’라는 식의 수박 겉핥기 교육이잖아요. 초등학교 때만이라도 아이들이 과학의 원리를 깨우치고 흥미를 느꼈으면 했어요.”

‘물로켓’ 발명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95년에 설립한 한국과학발명놀이연구회는 당시 교사 10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서울을 비롯해 인천, 부산, 대구, 광주, 충청, 경남, 제주 등 전국 6백여명의 현직교사가 뜻을 함께 하고 있다. 지난 2004년에는 과학기술부 정식 사단법인이 되기도 했다. 연구회에선는 주로 교내 발명반을 지도하고 있는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면 봉천초등학교에 50여명의 선생님들이 모여 ‘과학놀이팀’ 활동을 한다. 이는 좀 더 재미있게 활용할 수 있는 과학 수업 아이디어를 짜고 발표하는 시간으로, 타 지역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 선생님들의 모임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과학놀이팀’ 연구 활동 외에도 물로켓과 에어로켓을 연구하고 발사대회를 주관하는 ‘로켓팀’과 과학의 원리를 응용해 마술을 보여주며 아이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매직싸이언스팀’, 아이들이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발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발명교육팀’ 등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희 ‘과발연’의 자랑은 뭐니뭐니해도 ‘물로켓?에어로켓 발사대회’죠. 95년에 처음 ‘물로켓 발사대회’를 열었는데 당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물로켓’ 붐이 일기도 했어요. 처음엔 아이들이 그저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과학놀이 차원에서 시작했는데, 이후 높은 관심과 참여도를 보여준 덕분에 대회가 활성화 될 수 있었고요. 덕분에 여러 선생님들도 많은 연구 끝에 한국형 물로켓과 발사대를 제작했고, 그 뒤를 이어 에어로켓과 발사대를 개발해서 특허를 획득하기도 했어요. 결국 아이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선생님들의 능력을 키워준 셈이에요(웃음).”

삶에 유용하지 않은 지식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

경북 봉화군이 고향인 강성기 선생님은 어린 시절부터 강단 있는 골목대장이었다고 한다. 명랑 쾌활하고 장난끼 많은 성격에 의협심 강했던 그는 늘 많은 친구들을 몰고 다녔던 인기인이었다고.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그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운동은 가리지 않고 다 좋아했어요. 워낙 운동을 즐기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체육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죠. 체고에 진학한 후에는 주로 태권도와 사격을 했어요. 한때 국가대표 선수의 꿈을 꾸기도 했지만 기량이 미치지 못한 것 같아 포기하고 말았죠. 그래서 대학진학을 앞두고는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하고 서울교육대학교에 진학 했어요. 사실 본인의 꿈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원래 꿈이 선생님은 아니었지만 이 길을 택한 후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달려 왔어요. 지금은 교사가 제 천직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그는 졸업 후 발령받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운동을 지도했다. 비록 자신이 훌륭한 선수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가능성 있는 아이들을 발탁해 훌륭한 선수로 키워내는 것 또한 지도자로서 사명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누구보다도 의욕적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 또한 녹록치 않았다.

“제가 선수생활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운동은 1등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에요. 운동을 지도하면 그 만큼의 실적이 있어야 했고, 결과가 좋지 못하면 교사와 선수 모두에게 질타가 쏟아졌죠. 그러니 어떻게 의욕적으로 운동할 수 있었겠어요.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전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쳤고, 그럴 때마다 회의가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전 그때 생각했어요. 진짜 교사라면 몇몇 뛰어난 아이들만을 선수로 양성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 모두가 사회문화체육을 즐길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사실을요. 그런데 어디 현실이 그렇습니까?”

늘 의욕적인 태도로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그는 번번이 현실의 한계에 부딪쳐야 했다. 그러던 그가 과학교육에 눈을 뜬 건 지난 95년.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스스로도 “과학적 창의성이 조금은 내재돼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과학교사로 거듭난 강선생님은 단순히 이론만 가르치는 과학이 아니라 원리를 실생활에서 찾고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과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아이들이 과학을 생활화할 수 있는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게 하고자 했던 것.

그래서 그의 수업을 들여다보면 비이커나 시험관, 플라스크와 같은 실험기구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종이컵이나 플라스틱관, 스티로폼 등과 같은 재료들이 책상 위에 즐비하다. 무엇보다도 놀면서 과학을 배우는 게 강선생님 수업의 포인트.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학생들도 과학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원리를 캐내는 데 열심이고, 몇몇은 각종 과학경진대회에 나가 입상을 하기도 했다. 

“지루하고 어렵게만 여겼던 과학을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 없어요. 특히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끊임없이 생각하는 아이들을 보거나 대회에서 상을 받아오는 아이들을 볼 때면 교사로서 자부심까지 느껴요.”

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공부는 생활 속에서 또는 사회에서 2~3배 이상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론을 지닌 그는 ‘살아있는 공부’의 바탕에는 끈기와 노력이 깔려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1학년, 2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이 둘 있어요. 한참 공부할 때라 그런지 아내는 유난히 신경을 많이 써요. 시험기간이면 잠도 안자고 공부하는 아이들 뒤에서 같이 밤을 새곤 하죠. 그래서 항상 아이들한테 ‘쉬엄쉬엄 해라’ ‘놀면서 해라’라고 말하는 저와 아이들 공부에 열을 올리는 아내는 종종 부딪치곤 해요.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와는 아이들 문제 아니면 부딪칠 일이 없는데 말이죠(웃음).”

교육현장에서 누구보다도 열정을 다해 ‘살아 숨 쉬는 지식’을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강성기 선생님. ‘과발연’에서 만들어낸 힘찬 로켓처럼 우리 아이들이 꿈을 향해 주저 없이 뻗어나가길 꿈꾸는 그는, 오늘도 쉴 틈이 없다.

※강성기 선생님은 87년 3월1일 서울 신화초등학교에서 첫 교편을 잡으신 뒤 신우초등학교, 원당초등학교, 강남초등학교를 거쳐 현재 봉천초등학교에서 재직 중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