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으로 함께하는  로 켓 놀 이

                                                         강성기 지음 / 도서출판 바른사

제 4 장   대한민국 물로켓 에어로켓 발사대회

( 3 )  로켓의 역사

     
 

 

 

 

창공을 날아 보겠다는 꿈을 20세기 초 라이트 형제의 동력 비행 성공으로 실현하게 된 인류는 그 영역을 우주에까지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인류는 우주 공간에 진출하기 위해서 진공 상태의 우주에서도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로켓을 만들게 되었다.

로켓은 화약의 발명국인 중국에서 11세기 초에 최초로 발명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때는 로켓의 연료로서 마조각, 수지, 황, 목탄, 질산칼륨 같은 것을 혼합하여 참대통에 넣고 방향을 잡는 안정봉으로서 가는 참대를 붙인 것이었는데, 그 당시는 무기로써 사용되었다.

여기에 달린 도화선에 불을 붙이면 연료가 급격히 타며 그 힘으로 날아갔다. 중국에서는 이것을 '화전'이라 했다. 13세기에는 모두 병기로서 실용화되었고 유럽에는 13세기 후반에 전해졌다.

그 후 19세기 초에 영국인 콘 글레브(W. Conglev)가 로켓에 스핀(Spin)으로 궤도를 안정화시키는 방법을 고안하여 종래의 것에 비해 비행 정도를 향상시켰기 때문에 영국군에 정식으로 로켓 부대가 생겨 한때 크게 활약했다.

그러나, 이렇게 로켓탄을 회전시키는 방법이 대포에도 도입되어 명중도를 향상시켰기 때문에 로켓이 아닌 대포로의 회귀현상을 나았다.

그 후 반세기 정도 지난 1891년에 프러시아의 발명가인 간스빈트(H. Ganwint)가 로켓 우주선의 원리를 발표했지만, 학문적 체계를 정립한 사람은 같은 시대의 수학 교사로서, 로켓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찌올코프스키(Kostantin E. Tsiolkovsky)이다.

그는 1898년에 로켓을 이용한 우주 공간의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그 중 로켓의 비행법, 비행 원리 등에 관한 문제를 연구했다. 자신이 직접 로켓을 제작하지는 않았지만, 현대의 로켓 공학의 원리적 기초는 이 사람에 의해 확립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1883년 진공내에도 로켓은 배기 가스의 반작용에 의해 추진된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로켓은 배기 가스가 공기를 밀기 때문에 추진력이 생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로켓의 획기적인 가능성을 증명해 준 것이며, 로켓이 진공내에서도 작동한다는 것은 그가 죽은 후 로켓이 우주공간에 발사됨으로써 증명이 되었다.

그 후, 고다드는 액체 추진 로켓을 직접 설계 제작하여 1926년 3월 16일 미국 메사추세츠주 어번시에서 발사에 성공하였다. 이 실험 비행에서 도달 고도 13m, 비행 시간은 2.5초에 불과했지만 그 역사적 중요성에 있어서는 항공 개발에 있어서 라이트 형제의 키티 호크(KITTY HAWK)비행에 비유되는 우주 추진의 첫 역사적인 발사인 것이다.

여러 선각자들에 의하여 로켓에 대한 개발, 연구가 있었지만 이것을 실용화한 극대식 로켓으로 만들어 인간이 달 세계를 정복하는데 원동력이 된 사람은 폰 브라운(W von Braun)이다.

1920년대 후반부터 30년대에 걸쳐 독일에서는 로켓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았다. 바로 그때 독일 육군병기국에서도 제2차 대전의 전세를 만회하고자 장거리 공격의 위력을 가진 로켓의 연구 개발에 큰 관심을 가져 연구원을 물색하던 중 20세란 젊은 나이의 청년 폰 브라운을 발견하게 된다.

브라운의 연구 성과도 알코올과 액체 산소, 알코올과 과산화수소 등 여러 가지 액체 연료 로켓 실험을 한 결과 1934년에 도달고도 2000m의 A-2를 개발하게 된다. 그러나, 애초에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좀더 강력하고 전투기에 의해 요격될 수 없는 초음속 미사일의 대량생산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리하여 1942년 10월 3일에 고도 85km와 사정거리 190km를 비행하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대형 로켓 A-4호가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약 5분 동안에 250km를 최고 고도 80km까지 날 수 있는 것이었다. 로켓은 실험 발사에 성공한 2년 후인 1944년 9월 8일에 영국의 런던 폭격에 사용되었다.

2차 대전이 막을 내린 후 폰브라운은 미국으로 갔고 그의 동료 몇은 (구)소련으로 연행당했다.

이렇게 하여 미국과 (구)소련은 새로운 로켓 개발에 들어갔으며 독일 과학자들은 그 후에도 미, (구)소 양국에서 중거리 탄도탄, 대륙간 탄도탄 나아가서는 우주 로켓 개발에 활약하게 되었다.

보다 우수한 로켓의 연구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폰 브라운은 그 후에 레드 스톤(Red Stone)이란 단거리 탄도탄을 만들었고 그것을 좀더 크게하여 중거리 탄도탄인 주피터(JUPITER)를 개발하였다.

이무렵 (구)소련은 1957년 10월 4일에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닉 1호의 발사에 성공하여 우주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구)소련의 첫 인공 위성 발사에 커다란 충격과 자극을 받은 미국은 이때부터 폰 브라운에게 그들의 원래 계획이던 위성 발사를 최단시일 내에 완수할 것을 지시하였다.

레드 스톤(Red Stone) ICBM을 이용한 주피터(JUPITER-C)를 발사체로 드디어 1958년 1월 31일에 '익스플로러(EXPLORER) 1호'라고 이름지어진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뒤 폰 브라운이 지휘하는 마샬 우주 비행 센터에서 개발한 새턴(SATURN)V 로켓은 아폴로(APollo) 11호를 달에까지 올리는데 성공하였다.

1969년에 드디어 인간은 오랜 터전인 지구를 떠나 달에 발을 디딘 것이다.

아폴로의 성공적인 달 착륙과 귀환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우주 경쟁에서 (구)소련을 앞지르기 시작한 미국은 재사용이 가능한 우주 왕복선인 스페이스 셔틀의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우주 발사체의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